계영배에 흐르는 눈물
[계영배에 흐르는 눈물]
당 태종의 후궁이었던 무조(武照)는 아들 중종이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황제가 된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자 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다. 잔인한 숙청과 독단적 정치행태를 거듭하다가 신하들의 반발에 부딪힌 측천무후는 결국 친위대의 쿠데타로 폐위된다.
소안환(蘇安桓)이 그녀의 자진 퇴위를 권유하며 올린 '물극필반 기만즉경'(物極必反 器滿則傾)의 상소가 그대로 이뤄진 반전(反轉)의 역사였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뒤집히고, 그릇이 가득 차면 기울어져 넘친다"는 뜻이다.
1936년에 실시된 독일의회 선거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98.8%의 득표율로 집권당이 된다. 독일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로 전대미문의 권력을 거머쥔 총통 히틀러는 법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만약 그대들이 총통의 자리에 앉아있다면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재판하라.”
사법은 권력 앞에 무릎 꿇었고, 히틀러는 법 위에 군림한다. 삼권분립은 무너졌다.
희대의 살인마에게 입법권과 행정권에 이어 사법권까지 통째로 안겨준 독일국민은 수백만 유대인 집단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의 참패를 겪게 되자 비로소 잘못된 선택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저들은 악마를 천사로 착각했다. 악마는 빛나는 천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법이기에(고린도후서 11:14)…
독일은 지금도 그때의 과오를 뉘우치며 몸서리친다.
조선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어 이름을 날린 도공(陶工) 유명옥은 음주가무(飮酒歌舞)의 방탕한 생활로 삶의 파탄에 이르게 되자,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쏟으며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 '가득 찬 것을 경계하라'는 뜻의 이 잔은 술이 약 7할의 높이를 넘으면 잔 밑으로 새나가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안에는 말굽 모양의 관이 있어 대기압과 중력의 차이로 사이펀(siphon) 현상이 일어난다.
훗날 계영배로 술을 마시던 거상(巨商) 임상옥은 술이 자꾸 새나가자 화가 나서 잔을 던져 깨뜨렸다가, 문득 잔에 담긴 비밀을 알게 된다. 그 뒤로 도공의 눈물이 담긴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탐욕·노여움·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렸다고 한다.
계영배에 흐르는 도공의 눈물에는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깨우침이 짙게 배어 있다.
일도, 사랑도, 공부도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삶을 망가뜨릴 수 있다. 출세나 성공도 사람 됨됨이나 지닌 역량에 비해 지나치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생생히 경험하고 있는 정치의 현실 아닌가?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가 정부 예산을 깎아내리고 줄줄이 탄핵소추를 거듭하자, 극단의 상황에 몰렸다고 판단한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라는 극약처방을 내렸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찬반의 군중시위가 막바지로 극렬하게 치달으면서 대통령 파면이라는 극한의 사태가 벌어졌다.
끝까지 가 보고야 마는 우리네 성정 탓인가? 극단의 독선이 또 다른 극단의 독선을 부르는 반전의 역사가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풀코스 마라톤 경기에서도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들르는 짧은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물며 자유민주국가의 정치행로일까? 멈출 줄 모르는 극단에로의 질주는 반전을 부르며 파멸의 길로 직행한다. 지지율 높은 어느 정치인을 유죄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는가?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하는가? 아니라면, 히틀러가 독일법관들에게 요구한 '삼권분립 없는 껍데기 사법'을,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을 꿈꾸는 것인가?
절대권력자 히틀러의 종말은 패전과 자살이었다.
바를 정(正)자를 파자(破字)하면 '하늘(一) 아래 멈춘다(止)'는 뜻이 된다. 하늘처럼 높은 가치 앞에서는 '멈출 줄 아는' 지지(知止)가 바른 지혜다. 달려야 할 때 달리지 않고 머뭇거리면 실패가 불 보듯 빤하지만, 멈출 줄 모르고 마냥 달리기만 하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이다. 마치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무법차량이나 다름없다.
달리는 것이 성장이요 확장이라면, 멈춤은 내실 있는 성숙이다. 성숙 없는 성장, 내실 없는 확장은 나이만 먹은 미숙아에 머무르고 만다.
인문(人文)의 향기 없는 산업화는 물신(物神)의 우상 앞에 엎드러지고, 공화(共和)의 정신을 망각한 선동 정치는 천박한 포퓰리즘으로 전락한다.
성장과 세력확장에 매달려 성숙과 내실의 가치를 외면하는 정치집단은 사람다움의 공동체라기보다 탐욕에 찌든 천박한 무리에 가깝다. 대중의 지지도가 나치당처럼 하늘을 찌를 듯 높기를 바라는가?
독일 민중이 히틀러에 열광하던 시절, 악마의 실체를 꿰뚫어본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정치선동에 휘둘리는 대중을 '신앙 없는 미신(迷信)의 집단'이라고 꾸짖었다.
'물극필반 기만즉경'의 교훈을 저버리면 측천무후나 히틀러의 종말처럼 파멸의 구덩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겸손·절제·성찰… 그 멈춤의 깨우침이 계영배의 눈물로 흐르고 있다.
/이우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