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왜 저렇게 잘 싸우나?
티비를 통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시는 분들은 아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그렇게 포격과 폭격을 당하고도 표정이 어떻게 저렇게 차분하냐, 행동이 어떻게 저렇게 침착하냐, 아마 놀라실 겁니다. 줄을 서면 묵묵히 서있지 새치기한다든지 하는 게 없고 상점 약탈도 없고 아우성치는 사람도 없고 참 희한하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우크라이나 역사를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처참하게 당하는 데 이골이 났다고 하면 전쟁을 하면 주로 지는 쪽에 섰다는 거죠. 그리고 죽는 사람 숫자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제가 계산해보니까 지난 100년 동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스탈린의 폭정으로 인한 대기근, 최근에 러시아 침공까지 합쳐서 죽은 사람이 약 1000만 명이 됩니다. 인구 4000만에 1000만 명이 전쟁과 대기근으로 죽었다고 하면 이분들이 처참하게 당하는 데 이골이 났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최근 100년 동안이고 그 전에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남북으로 동서로 공격당하고 쓸리고 하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땅이 워낙 비옥합니다. 숨을 산도 없습니다. 대평원입니다. 곡창지대입니다. 동쪽에서 몽골군이 들어오고 요사이는 러시아군이 들어오고, 서쪽에서는 힘센 독일군이 들어오고, 폴란드(가 들어오고), 북쪽에서는 리투아니아, 남쪽에서는 오스만터키. 이렇게 동서남북으로 당하는 데가 우크라이나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은 있는데 국가를 만들지 못했어요. 지금 우크라이나가 최근 30년 동안 처음으로 독립국가로 제대로 운영되려고 하는데 푸틴이 저렇게 못된 짓을 하고 있습니다.
키예프(키이우)는 한때 유럽에서 제일 큰 도시였습니다. 12세기쯤 되는데 인구가 10만 명 되었어요. 그러다가 1240년 칭기스칸의 손자인 바투가 기마군단을 이끌고 와서 이 도시를 포위했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이니까 몽골 군대가 항복하라고 권유합니다. 키예프(키이우) 공국 사람들은 결사항전해요. (몽골군이) 10여 일 만에 함락시키고 나서 10만 명 되는 사람을 거의 다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거기서 키예프(키이우)가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립니다. 러시아의 중심지가 모스크바로 옮기게 되죠. 물론 키예프(키이우)가 다시 살아납니다.
요사이 신문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도시가 있습니다. 전쟁사(戰爭史)를 읽은 사람들은 아주 귀에 익은 도시입니다. 우선 키예프, 키이우라고 불리는데 키예프가 귀에 익은 도시이죠. 키예프는 1941년 6월22일 독일군이 소련으로 쳐들어옵니다. 그해 8월 키예프를 포위합니다. 포위된 러시아군이 결국 항복하는데 그때 항복한 러시아 군인 숫자가 60만 명입니다. 거기 죽은 사람, 다친 사람, 포로된 사람 다 합치면 60만 명에 플러스가 되겠죠. 아마 세계 전사(戰史)에서 한꺼번에 60만 명이 항복한 것은 처음일 겁니다.
크림반도에 있는 세바스토폴, 지금 아직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아있는 오데사, 이 두 도시도 1941년 독일군의 공격으로 공방전이 치열했습니다. 결국 항복하기는 했는데 거기서도 어마어마한 숫자가 죽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하리코프에서도 2차 세계대전 때 격전이 몇 차례나 벌어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키예프(키이우), 하리코프, 오데사, 세바스토폴 여기 격전으로 아마 100만 명 죽었을 겁니다. 이런 걸 겪은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크라이나에 유대인이 많이 살았죠. 젤렌스키 대통령도 유대인 아닙니까? 그 아버지 친척들이 홀로코스트로 죽었다고 합니다. 나치군이 쳐들어오니까 처음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환영했습니다. ‘이제 러시아의 압제로부터 우리가 독립하겠다.’ 그런데 히틀러가 환영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을 골라서 죽였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살다가 죽은 유대인들이 60만~100만 명 된다고 합니다. 키예프(키이우)에서만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2차 세계대전 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느냐. 우크라이나 사람으로서 군대에 간 사람이 250만 명 죽었다고 합니다. 민간인이 450만 명 죽었다고 합니다. 합쳐서 700만 명 죽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보다 더 많이 죽었다고 해요. 러시아는 600만 죽었다고 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주전장(主戰場)이 우크라이나였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등 합쳐서 소련 사람 죽은 숫자를 2000만 명 이상으로 보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이 죽은 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우크라이나 영토가, 그때는 영토도 아니죠, 일부는 러시아 제국이고 일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서 같은 우크라이나 사람끼리 서로 싸웠던 적도 있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이 1917년에 일어나고 그 뒤에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합병되죠. 이때 1930년대에 스탈린이 집단농장을 실시하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곡창지대인데도 식량을 다 빼앗아가고 해서 대기근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한 300만 명이 죽습니다. 이건 굶겨죽인 겁니다. 아까 전쟁에서 죽은 700만 명을 합치면 그것만 해도 10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런 우크라이나 사람이니까 요사이 저렇게 당하면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우크라이나 4000만 명 중에서 10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 약 400만 명은 폴란드 등으로, 600만 명은 우크라이나 안에서 거처를 옮겼는데 전체 어린이 중에 반이 집을 떠났답니다. 부모들이 피난 갈 때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가니까 어린아이 숫자로 치면 전체 어린아이 중에 반이 집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이렇게 당하고 당하고 당한, 아마 세계에서 지난 100년 동안 가장 많이 당한 게 우크라이나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침략자 아니겠습니까? 독일은 민간인, 군인 합쳐서 죽은 사람이 650만 명입니다. 독일은 650만, 우크라이나는 700만 명, 일본이 246만 명 죽었습니다. 프랑스가 60만 명. 프랑스보다 열 배나 되는 우크라이나 사람이 죽었다는 거죠. 이탈리아가 50만 명, 유고슬라비아가 대전 때문에 많이 죽었습니다, 170만 명. 참 끔찍한 세상을 보는 데 이골이 난 우크라이나 사람들, 모처럼 지난 30년 동안 민주주의를 하면서 자유를 맛보면서 이제 조금 숨 돌리고 하는데 또 푸틴 같은 자가 쳐들어와서 이렇게 살육을 하고 있습니다.
1950년 스탈린·모택동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남침했을 때 우리 한국인이 결사항전했습니다. 한국전쟁 때 한국인 민간인과 군인, 남북한 합쳐서 약 300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 피의 대가로서 우리는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한국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서방세계, 미국 등 자유세계 전체의 자유를 지키는 데 300만 명이 희생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투쟁을 통해서 서방세계, 자유세계의 자유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직접 들어오고, 연인원으로 200만 명의 미군이 들어왔습니다. 유엔군도 들어오고 해서 같이 싸워주었는데 우크라이나는 미국, 나토가 무기만 대줄 뿐 병력은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1950년의 한국인처럼 2022년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세계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11-20
趙甲濟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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