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武侯祠(무후사)
성도 시내에는 삼국지에서 촉한을 세운 유비의 무덤과 사당이 있다.
물론 형제의 연을 맺어 (도원결의) 그를 도운 장비와 관우, 그리고 천하의 재사 제갈공명의 영정들도 함께 모셔져 있는데
사람들은 유비보다는 제갈공명을 더 기억하여 (제갈의 死後 봉직인) 무후를 모신 사당이라고 '무후사'로 부르고 있었다.
<촉한을 세운 유비의 궁전이 있던 자리... 시내 중심가인 '天府(천부)광장'이다..>
<成都시내에는 2층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유비의 묘가 있는 '武侯祠(무후사)' 입구.... 분명히 한나라를 세운 유비의 사당이라는 漢昭烈廟(한소열묘)라고 씌여있지만
다들 무후사라고 부르는데 즉, 유비의 사당이지만 (뒷편에 함께 모셔진) 제갈공명의 사당을 더 높이 평가하는것이다.
<漢昭烈廟(한소열묘)...즉, 武侯祠(무후사) 입구...>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중문에 걸려있는 현판 하나...
明良千古의 明글자가 날 日자가 아니라 눈 目자를 썼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유비가 (자신의 능력은 많이 모자라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서 제갈과 방통, 관우와 장비등 사람들을 잘 골랐기에
(천고에 밝은 눈이라고) 눈 目자로 썼다고 하니 중국사람들의 뜻글자에 대한 생각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글자이다.
<유비가 모셔진 사당....>
<왼쪽 (보는사람은 오른쪽)에는 손자가 모셔져 있다>
<오른쪽.... 아들이 모셔져 있던 자리는 모두 치워지고 아무것도 없다
즉, 촉한이 망할때 손자는 최후항전을 주장했지만 아들은 쉽게 투항을 주장했기에 그리 되었다는 설명이다>
유비와 아들, 손자의 자리에서 오른쪽에는 제갈공명이, 왼쪽으로는 장비가 모셔져 있으며
길게 회랑을 지어 역시 오른쪽에는 문관들이, 왼쪽에는 무관들이 모셔져 이름과 업적등이 적혀있다.
<제갈공명... 재상이었지만 死後 '武侯'로 책봉받아 면류관을 쓰고 있다>
<장비... 아들들과 함께...>
<문관들...>
<무관들...>
유비의 사당을 지나니 비로소 제갈공명의 사당인 武侯祠(무후사)가 나온다.
<제갈공명이 모셔져 있다... 제갈공명을 얼마나 존경하고 추앙하는지 알것 같다.>
<三義廟(삼의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어 3형제가 되었기에 한곳에 모셨다>
<유비의 묘...높이 12m, 둘레 180m로 중국 황제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사적지이다>
080222고령초님의퍼온여행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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