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대사 기행
고시래, 모친위해 공양하던 진묵대사가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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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씩 떼어내 던지는 것이 ‘고시래’다.
백과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고수래·고시례·고씨네 등으로도 불리며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무사히 행사를 치르게 해달라는 기원과 잡귀 추방의 주술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되어있다.
국내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 만경뜰에는 진묵대사(震묵一玉, 1562-1633)가 ‘고시래’의 원조로 알려져 오고 있다.
효심 깊은 진묵대사는 어머니 조의(調意)부인이 돌아가자 김제 만경 화포리 불거촌(佛居村)에서 장사를 지낸다. 이곳은 진묵대사 탄생지로 천년간 향이 끊이지 않는다(無子孫 千年 香火之地)는 명당터이다. 지금도 이곳 진묵대사 모친 묘에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참배객이 줄을 이어 향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만경뜰을 지나던 진묵대사는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로부터 공양 받을 때마다 음식을 조금 떼어내 어머니를 위해 들판에 던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농부들도 진묵대사 어머니를 부르며 음식을 나눴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의씨에게 예’를 올린다는 말이 ‘고씨네’ ‘꼬시래’ ‘고시래’ 등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백과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고수래·고시례·고씨네 등으로도 불리며 지신(地神)이나 수신(水神)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무사히 행사를 치르게 해달라는 기원과 잡귀 추방의 주술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되어있다.
국내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 만경뜰에는 진묵대사(震묵一玉, 1562-1633)가 ‘고시래’의 원조로 알려져 오고 있다.
효심 깊은 진묵대사는 어머니 조의(調意)부인이 돌아가자 김제 만경 화포리 불거촌(佛居村)에서 장사를 지낸다. 이곳은 진묵대사 탄생지로 천년간 향이 끊이지 않는다(無子孫 千年 香火之地)는 명당터이다. 지금도 이곳 진묵대사 모친 묘에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참배객이 줄을 이어 향을 올리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오는 구전에 따르면, 만경뜰을 지나던 진묵대사는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로부터 공양 받을 때마다 음식을 조금 떼어내 어머니를 위해 들판에 던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농부들도 진묵대사 어머니를 부르며 음식을 나눴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의씨에게 예’를 올린다는 말이 ‘고씨네’ ‘꼬시래’ ‘고시래’ 등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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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촌 초입에서 만난 송봉철 씨(75. 율리부락)는 “일하다가 술이나 밥을 먹을 때 ‘허-이, 꼬시래’ 하고 음식을 나누면 집안이 잘되고 농사가 잘되지. 꼬시래는 하는 사람도 좋고 받는 이도 좋다고 허거든”이라며, 마치 진묵대사 모친을 부르는 듯 모습을 취한다.
불거촌은 약 3-4만평 규모의 야트막한 구릉이다. 진묵대사 모친 묘 주위에는 성모암(주지 종우)과 조앙사(주지 송헌)가 자리해있다. 몇 해전만해도 진묵사라는 절까지 무려 3곳의 사찰이 함께한 진묵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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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모암은 지난 2002년 진묵대사 모친 묘 옆에 ‘고시례전’을 건립해 고시래 의미를 계승하고 있다. 전각 안에는 진묵대사와 모친 조의부인 영정이 모셔져있다. 조앙사 진묵전에도 진묵대사와 모친 조의씨, 누이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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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촌에서 나고 자란 조앙사 주지 송헌 스님은 “진묵대사가 고시래를 한 연유는 유주무주 고혼을 위한 헌식 의미였지만 후대에 오면서 부처님 화신으로 불리는 진묵대사의 영험력에 의지해 소원을 비는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며 “고시래가 기복이 아닌 작복(作福)의 실천행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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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암: 063-544-0416 조앙사:063-542-5585
*교통편:
자동차로 서해안 고속도로 동군산 IC, 만경 IC에서 ‘대야검문소-김제’간 도로이용.
버스나 기차로 김제에서 만경 화포리행 시내버스 이용(90분 간격)
3. 성모암 (진묵대사모친의묘)![]() ![]() ![]() 만경읍에서 군산 방면으로 1킬로미터쯤 가다보면 서쪽으로 화포리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 성모암에 이른다. ![]() 만경읍 화포리에서 진묵대사(명종17년 1562년에 태어나 인조11년 1633년에 입적)의 어머니 묘소가 400여년 넘게 긴세월 동안 잘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1927년 5월 이순덕 화부인이 계룡산에서 고향인 임실땅으로 가다가 이곳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그날밤 꿈을 꾸었다한다. 서쪽 하늘로부터 흰가마가 내려오더니 한 스님이 나타나 어느 묘소에 내려 쉬어가라 하였다. 꿈이 하도 이상하여 그때부터 바로 진묵대사 어머니 묘소에 사초를 하고 봉향계를 조직했다한다. 1937년에 진묵사를 창건하고 1938년 4월에 진묵대사의 약력과 이순덕화부인의 공적비를 세우고 묘밑에 제각을 건립하였다.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소는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로 자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이어지는 명당이라하며 오늘도 많은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진묵대사를 흠앙(欽仰)하는 조앙사가 있고 추모하기 위한 진묵사가 있다. |
<참고 문헌> 震默祖師 遺蹟攷, 東師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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