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智慧 로 삶의 마침표 찾아가는 窓
종교/종교계 진리

유다보다 못한 성직자들 ; 자살을 공공연하게 축복하는 새제들

by 보덕봉 2009. 6. 21.

 
유다보다 못한 성직자들

 자살한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저는 요즘 이 문제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인터넷에 유서를 올리고 산책을 나간 다음 바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버린 것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의 죽음을 놓고 정치권이나 일부 시민단체에서 ‘사회적 타살’이라고 억지논리를 펴기도 하지만, 저는 신앙적 측면에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세례를 받은 천주교신자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의 그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재임 5년 동안 미사 참례하는 모습을 본 일이 없고, 봉사를 한다거나 달리 신앙생활을 했다는 얘기를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천주교사제가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 가서 위령미사를 봉헌했다는 보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배워 온 교리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영혼은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영혼을 위하여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릴 수 없다고 들었고 그러한 사례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 대상이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이라 특별히 고려해서 그런 것인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만, 지위가 높건 낮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같은 형제요 자매로 평등하게 대접하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공공연한 자살자 위령미사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미사집전에 참가한 정의구현사제단의 김모 신부는 예수님의 부활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연결시켜, “부엉이 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다”고 말하고, “(노 전 대통령이)‘아래로 떨어지셨다’는 비보를 들으며 주님승천 대축일(5월 24일)을 맞이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승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참 난감하고 괴로웠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것입니다. 보도된 김 신부의 말을 좀 더 얘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승천의 감격은 이런 모든 부끄러움과 아픔 후에 벌어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하느님의 역사였다. 벌써 엿새째 복잡한 도심이나 고요한 산골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쉼 없이 도도하게 이어지는 백만의 추모물결과 이 땅 구석 구석 높이 피어오르는 분향의 향기는 부활 승천의 저 장엄했던 장면을 상상하게 해 준다. 당신의 최후에서 투신과 봉헌의 의미를 잠시 깨달았다. 생전에 당신께서 보여 주신 희망과 또 놀랍게 마련해 주신 새로운 희망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옛날,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노라 하시던 바오로사도처럼 당신께서도 이승의 수고를 훌륭히 마치셨으니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부디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편히 쉬기를 빈다.”
 
 함께 미사를 집전한 다른 신부는 “자살을 하지 말라는 계명은 생명이 본디 하느님의 소유이므로 스스로 처분할 수 없다”는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사인은 자살이지만) 사회적 타살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므로 구원의 여지가 열려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답니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육신은 부서졌지만 그 혼과 정신은 국민들 마음에 살아 있고 몸은 바위 아래로 떨어졌지만 정신은 드높아졌다.”고 목청을 높였다는 것입니다.
 
 과연 위에 인용한 말들이 사제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 .... . 제 생각으로는 자살을 미화하고 신앙을 혼란스럽게 하는 언동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 며칠 뒤 ‘생명의 날’담화문에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는 “실상 우리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죽음의 문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그 심각성도 위험의 수위를 넘었다.”고 지적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과 낙태시술 국가라는 오명은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생명경시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주교님의 담화문은 이어 “자살은 우리사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살은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귀중한 생명을 거부하는 중대한 행위이자, 하느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생명의 하느님은 물론 자기사랑을 거부하는 것이며 이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향한 정의와 자비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봉하마을에서 미사를 집전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언행은 주교회의 담화문내용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난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모두가 하나되기를 바라고 기도하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그 신원이 평신도이건 성직자이건 믿음에 혼란을 가져오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부여 이 사람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진리위해 몸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성가 39번

황혼의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