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가축’ 곤충이 밥상의 미래다 | |
25억명 즐겨…주전부리 넘어 주요 음식으로 식량위기 대처 단백질 공급원이자 친환경적 | |
조홍섭 기자 | |
귀가 먹먹할 정도로 내지르는 말매미 소리를 듣고 입에 군침이 고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엔 없겠지만 동남아에서 온 사람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퇴근길 차가운 맥주에는 바삭바삭한 매미 튀김 안주가 제격이니까.
일본 도쿄에서는 ‘곤충요리 시식회’가 매달 열린다. 여기에선 번데기 카레, 매미 칠리 소스 무침, 말벌유충 요리 등이 선보이는데,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영국의 한 인터넷 상점에선 후추 맛이 나는 동남아 개미를 잔뜩 집어넣은 막대사탕을 약 8천원에, 오븐에 구운 거대한 캄보디아 타란툴라 거미 요리를 약 3만원에 판다. 캄보디아에선 타란툴라를 크메르 루즈 혼란기 때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수익금의 25%는 서식지 보호에 쓴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개미 잔뜩 집어넣은 막대사탕이 약 8천원 한국을 여행했던 한 영국인은 <가디언> 인터넷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깨물자 입안에서 탁 터지면서 즙이 튀었다. 약간 자극적이고 쓴 맛이 났지만 애인을 졸라 다시 사먹었을 만큼 맛있었다.” 이 글의 제목은 ‘환경친화적인 간식거리, 누에(번데기)’였다.
곤충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우리나라에도 활발하다. 해충을 제거하는 천적으로, 꽃가루받이 일꾼으로, 함평 나비축제처럼 행사 주인공으로, 애완동물로 곤충이 요즘 인기다. 이 용도에서 한 가지 빠졌다면 식용이다. 중국이나 동남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곤충이 얼마나 흔한 먹을거리인지 실감한다. 멕시코에선 토티야에 벌레를 얹어 먹기도 하고, 태국 야시장에선 맥주 안주로 튀긴 귀뚜라미나 메뚜기를 많이 먹는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곤충은 주전부리가 아니라 요긴한 음식이다. 게다가 기후변화와 식량위기에 대처할 미래 단백질 공급원이자 친환경적 먹을거리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인도차이나의 라오스에서 식용곤충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의 40%가 영양실조에 걸려있는 이 나라에서 곤충은 무시할 수 없는 식량이다. 이 기구의 조사로는 이 나라 사람 95%가 곤충을 먹는다고 답했다. 유엔기구는 라오스 정부와 함께 곤충의 사육에서부터 상용화, 소비까지 전문적 조언과 장비 지원에 나섰다.
로마 귀족 딱정벌레 애용…중국 178종 먹어 이 기구 라오스 대표부의 전문가인 세르게 베르니아우는 “(식용곤충이) 라오스의 영양실조 문제를 넘어 장차 캘커타와 상하이, 그리고 뉴욕과 로마의 대도시를 먹여살리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곤충은 생산이 환경친화적이고 기존 육류에 견줘 에너지와 공간이 덜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엔이 주도하는 식용곤충에 관한 국제회의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2008년 유엔식량농업기구가 타이 치앙마이에서 연 국제 워크숍의 주제는 “식량으로서의 산림 곤충: 이제는 인간이 깨물 차례”였다. 곤충을 먹은 역사는 오래다. 1세기 로마의 학자 플리니는 “로마 귀족은 밀가루와 포도주로 기른 딱정벌레 애벌레를 즐겨 먹었다”고 적었다. 중국에서 곤충 식용의 역사는 3000년이 넘는다. 서남부 윈난성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대나무 벌레, 동충하초, 개미 알, 말벌 유충, 여치 등을 대접했다. 중국에서만 178종의 곤충을 먹는다.
불포화지방산으로 건강식…비타민, 미네랄도 풍부 곤충 식용의 역사를 지닌 나라는 아시아 29개국, 아프리카 36개국, 남아메리카 23개국, 오세아니아 원주민 등이며 곤충을 먹는 인구는 전세계 25억명에 이른다. 곤충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로는 중국, 타이,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등이 꼽힌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인류가 먹는 곤충이 1700여 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널리 먹는 곤충은 메뚜기와 귀뚜라미 종류, 나비와 나방의 유충, 딱정벌레의 애벌레와 가끔은 성충, 날개 달린 흰개미와 꿀벌·말벌·개미의 애벌레, 매미, 물속벌레 등이다. 남미 일부지역에선 팝콘 대신 잎꾼개미의 배 부위를 구워먹는다. 중국 남부에선 전갈을 길러 먹고,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에선 거미도 식용이다. 이처럼 곤충이 오랫동안 인류의 먹을거리 목록에 올라있는 이유는 맛과 영양이 좋기 때문이다. 곤충은 가축보다 식물을 단백질로 변환하는 효율이 높다. 또 조리한 메뚜기는 단백질 함량이 60%에 이르며 불포화지방산을 포함해 건강식이기도 하다. 나비나 개미, 딱정벌레의 애벌레에는 지방과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하다.
네덜란드 와게닝겐 대학은 지난 6월 수프로2(SUPRO2)란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정부로부터 1000만 유로를 지원받아 ‘인간 소비를 위한 지속가능한 곤충 단백질 생산’을 목표로 한다. 곤충을 그대로 먹기에 거북하다면 단백질 성분을 가공해 식품이나 가축 사료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와 날 생선은 잘 먹으면서 왜!세계에서 식용곤충을 멀리하는 곳은 종교적 이유가 있는 이슬람권을 빼면 서구가 유일하다. 그러나 최근 서구 사회 안에서도 이런 편견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곤충과 친척인 새우는 잘 먹지 않느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와 날 생선, 생굴은 잘 먹으면서 곤충을 기피할 게 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곤충이 주로 약재로 이용돼 왔고 메뚜기와 번데기는 간식거리로 사랑받아 왔다. 특히 번데기는 양잠산업의 성쇄와 운명을 같이 했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가 세계 누에고치 생산량의 10%를 생산하는 전성기 때, 누에고치 속에 든 누에 번데기는 서민들의 요긴한 단백질원이었다.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 화학섬유에 밀려 명주 산업이 종말을 고하면서 "뻔"하고 외치는 소리도 듣기 힘들어졌다. 요즘 다시 건강식품으로서 누에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아쉽게도 누에고치를 만들기 전 애벌레 상태에서 분말 등이 되기 때문에 ‘국산 번데기’는 여전히 볼 수 없다.
기후변화와 세계적 식량위기는 곤충을 더는 진기하거나 독특한 음식에 머무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는 가축의 자리를 ‘작은 가축’인 곤충이 차지할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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