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과 지혜의 차이 ♡
중국 노나라때 한 선비가 강을 건너게 해 주고 있는 뱃사공에게 뒷짐을 지고 큰소리로 물었다.
"자네 글을 지을 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세상 사는 맛을 모르는 구먼. 그럼 공맹(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아는가?"
"모릅니다"
"저런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 구먼.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는가?"
"아닙니다. 까막눈입니다"
"원 세상에! 그럼 자넨 왜 사는가?"
이때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게 되었다. 이번엔 사공이 반대로 선비에게 물었다.
"선비님, 헤엄 칠줄 아십니까?"
"아니, 난 헤엄칠 줄 모르네."
"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선비의 모습은 지식을 자랑하며 살지만 정작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는 법' 을 모르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는 재미도 많고 보람도 많지만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인생의 '암초'에 덜컹 부딪히게 될 때 자기 목숨 하나 건지지 못 한다면 지식이 아무리 많은 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설령 세상의 지식은 모자라더라도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공이 오히려 더 큰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닐까?
그래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고난이나 시련이 왔을 때 그 차이가 드러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어떤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지만 지식만 있는 사람은 쉽게 좌절해 버린다.
지혜는 위기때 더욱 빛을 발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어느날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한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다. 솔로몬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요"라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제일의 덕목이 지혜라는 사실을 이 이야기에서 알수가 있다.
지혜는 하루 아침에 생기지를 않는다. 지혜를 얻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많은 공부를 통해 지식이 쌓여 얻는 간접적인 지혜가 있으며 또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며 오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얻는 직접적인 지혜가 있는 것이다. (모셔온 글)
중국 노나라때 한 선비가 강을 건너게 해 주고 있는 뱃사공에게 뒷짐을 지고 큰소리로 물었다.
"자네 글을 지을 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세상 사는 맛을 모르는 구먼. 그럼 공맹(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아는가?"
"모릅니다"
"저런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 구먼.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는가?"
"아닙니다. 까막눈입니다"
"원 세상에! 그럼 자넨 왜 사는가?"
이때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게 되었다. 이번엔 사공이 반대로 선비에게 물었다.
"선비님, 헤엄 칠줄 아십니까?"
"아니, 난 헤엄칠 줄 모르네."
"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선비의 모습은 지식을 자랑하며 살지만 정작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는 법' 을 모르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는 재미도 많고 보람도 많지만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인생의 '암초'에 덜컹 부딪히게 될 때 자기 목숨 하나 건지지 못 한다면 지식이 아무리 많은 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설령 세상의 지식은 모자라더라도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공이 오히려 더 큰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닐까?
그래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고난이나 시련이 왔을 때 그 차이가 드러난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어떤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지만 지식만 있는 사람은 쉽게 좌절해 버린다.
지혜는 위기때 더욱 빛을 발한다.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어느날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한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다. 솔로몬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요"라고 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제일의 덕목이 지혜라는 사실을 이 이야기에서 알수가 있다.
지혜는 하루 아침에 생기지를 않는다. 지혜를 얻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많은 공부를 통해 지식이 쌓여 얻는 간접적인 지혜가 있으며 또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며 오랜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얻는 직접적인 지혜가 있는 것이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