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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역사적 인물

박정희 대통령 최후만찬장에서의 심수봉과신재순의 증언

by 보덕봉 2023. 3. 13.

심수봉과 신재순의 증언이 김재규의 범죄를 소상히 밝혔다. 만약 심수봉과 신재순이 그날 그곳에 없었다면 온갖 조작과 허위가 난무했을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었던 두 여인에 의해 역사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보존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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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최후 만찬장에서 심수봉은 '그때 그 사람'을 불렀을까?

김계원, 심수봉, 신재순 세 사람에게 내가 집요하게 물었던 것은 “박정희가 가슴 관통상을 입은 상태에서 ‘난 괜찮아’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였다.

趙甲濟

어제 MBN의 '불타는 트롯맨'의 심사위원으로 심수봉씨가 출연했다. 가수들이 심수봉의 불후의 명곡
'그때 그사람' '비나리' '백만송이장미'를 불렀고
심씨도 자작곡을 불렀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사건인 10.26 때 박정희와 차지철이 김재규에 의하여 사살되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손바닥으로 박정희의 등에서 샘솟듯하는 피를 막았던, 그야말로 레전드가 된 68세 가수의 시간이었다.
심씨가 작사 작곡한 노래엔 뭔가 '그때 그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30여년 전 인터뷰했을 때도 그랬지만 어제도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 난장판을 겪고도 심리적 안정을 유지해온 것이 고맙게도 생각되었다.
심수봉 씨의 노래 가사는 자전적인 분위기이면서 문학적이다.

   나는 박정희의 마지막 만찬장에 있었던 생존자 3명, 즉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 신재순, 심수봉 세 사람을 다 만나서 거의 초단위로 역사적 순간들을 재구성한 적이 있다.
김계원 씨가 작고했으니 이젠 두 여인만 남았다. 박정희의 최후의 순간을 정확히 증언해주는 두 여인의 존재는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沈, 申 두 증인의 이야기는 앞뒤가 맞고 객관적이다.

   김계원, 심수봉, 신재순 세 사람에게 내가 집요하게 물었던 것은 "박정희가 가슴 관통상을 입은 상태에서 '난 괜찮아'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였다.
세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면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피하게"란 뜻이었다.
박정희 세대는 '난 괜찮아'를 입에 달고 다녔다. 특히 신재순 씨의 증언이 세부적이었는데 술안주의 위치까지 기억했다.
그녀는 박정희의 마지막 모습에 대하여 名言을 남겼다.
   "체념한 듯 해탈한 듯했습니다."

   참고로 심수봉 씨에 대한 육군본부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 검찰관 대위 차한섭 작성 1979년 11월18일자 참고인 진술조서가 있어 소개한다.
'그때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불려졌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문: 진술인의 연예인으로서의 경력에 대해 진술하시요.
   답: 1978.9.9. MBC 78대학가요제에서 본인의 가요 ‘그때 그 사람’이 힛트를 하게 되여 1979.6월부터 정식으로 가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 1979.10.26. 저녁에 중앙정보부가 관리하는 궁정동 식당에 가게 된 경위에 대해 진술하시요.
   답: 1979.10.26. 본인은 집에 있는데 16:30경 며칠 전 만난 적이 있는 박선호씨로부터 전화가 와서 17:30까지 내자호텔에서 좀 만나자고 하여 당시 본인은 그날 저녁 쇼쇼쇼 프로 스케줄이 있어 곤란하다고 하였더니 그것은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하기에 본인은 연예인들 공연이 있는 줄 알고 흑석동에서 기타를 사가지고 약속시간 보다 조금 늦게 내자호텔로 갔더니 입구의 차에 박선호가 있어 동승하고 있던 신재순과 함께 궁정동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문: 그날 궁정동에 도착하여 연회석상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경위에 대해 진술하시요.
   답: 궁정동에 도착한 시간이 18:00가 조금 지난 때였었는데 처음 들어간 곳이 대통령경호관 대기실 이었으며 그곳에는 평소 지면이 있던 안재송씨와 또 한 분(나중에 알고보니 정인형 처장이었음)이 계셨으며, 그곳에서 박과장에게 보안각서를 제출하였고 그곳에서 TV를 보다가 잠시 후 부속실 문 앞에서 대기하던 중 어떤 분(남효주)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여 18:40경 각하가 계신 연회석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중앙에 탁자가 놓여 있고 방안쪽 중앙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앉아 있었고 본인은 각하 좌측에 신재순은 우측에 앉았으며 본인 앞쪽에는 김계원 비서실장이 앉아 있었으며 신재순이 앞에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앉아 있었으며 김재규와 신재순 사이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문: 연회석상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 있는 동안 연회석상의 얘기가 듣기지는 않았어요.
   답: 간혹 대기실 문이 열리고 할 때 들려오는 소리는 차지철과 김재규가 상호 언성을 높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문: 연회석상에서 김재규가 대통령 각하를 시해할 때 까지의 경위에 대해 아는 바를 진술하시요.
   답: 연회석상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소개 인사등이 있었고 그리고 19:00경이 되려고 하니 각하께서 자꾸 시계를 쳐다 보시니까 차실장이 “시간이 되면 TV를 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얼마 뒤 차실장이 자동스윗치로 TV를 켜 7시 KBS 뉴스를 시청하였는데 그때 삽교천 제방 준공식 장면 등을 보았고 다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과 미 대사가 만난다는 뉴스를 보시고는 각하께서
“총재도 아닌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셨으며, 그러다가 김재규 부장에게 각하께서 '깡패들 사진만 말고 진짜 사진을 좀 보여달라'고 하자 김재규는 '예' 하고 답변 하였습니다.
  
   이때 각하께서 우리 노래나 한 곡씩 들어보자고 하시면서 저를 쳐다보기에 본인은 대기실로 가서 기타를 가지고 와 본인은 ‘그때 그 사람’을 부르고 앵콜곡으로 ‘두만강’을 불렀으며 다음 차 실장을 지명하니 차 실장이 ‘도라지’와 ‘나그네 설움’이란 두 곡을 불렀는데 ‘도라지’를 부를 때인가 누군가가 와서는 김재규 부장에게 귀속말로 “과장님이 좀 뵙자고 합니다”라고 하니까 김재규는 곧 밖으로 나가고 차 실장의 노래가 끝난 후 신재순에게 지명이 되어 신양이 ‘사랑해’를 부르려고 본인이 반주를 하는데 김재규가 들어와 앉자마자 앉은 자세로 차 실장을 향하여 이 건방진 놈 하면서 총을 한 발 쏘았고 바로 일어나서 각하를 향하여 1발을 쏘았습니다.

   문: 그날 연회석상의 분위기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별다른 것은 느끼지 못했으나 김재규와 김계원은 계속 침울한 것 같았고 오히려 각하께서 분위기를 조정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문: 연회석상에 들어간 후 김재규가 자리를 몇 번이나 비웠나요.
   답: 처음에 연회석상에 본인과 신재순을 남겨두고 전원이 잠시 나갈 때 나갔었고(그때가 언제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차실장이 도라지를 부를 때 한 번 나갔습니다.

   문: 처음 김재규가 차 실장을 향하여 1발을 쏘았을 때 차 실장이 어디에 맞았으며 차 실장의 행동은 어떠하였나요.
   답: 그 당시 차 실장이 손목에 맞은 것을 보았고 차 실장은 화장실로 갔다가 손의 피를 씻고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태도로 보아서는 차 실장은 김재규가 자기를 사살하려고는 생각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문: 그 당시 김계원 실장의 행동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김재규가 차 실장을 향해 총을 쏘았을 때 김계원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 김재규가 차 실장을 향해 총을 쏠 때 각하께서는 뭐라고 하셨나요.
   답: 각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자세를 고쳐 앉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김재규가 각하를 향해 1발을 쏜 것입니다.

   문: 차지철을 향해 1발을 쏠때 김계원이 김재규에게 각하 앞에서 왜 이러느냐고 만류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계원은 김재규가 차 실장을 향해 총을 쏘자 자리를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 각하께서 1발을 맞았을 때 진술인은 무엇을 하였는가요.
   답: 차 실장이 화장실을 갔다 나오면서 "각하 괜찮으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각하께서는 나는 괜찮아라고 하셨는데 본인이 옆에서 보니 호흡이 이상한 것 같아 "괜찮으시냐"고 다시 물으니 "괜찮다"고 하셨는 데 곧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문: 각하께서 1발을 맞을 때 진술인은 계속하여 각하 옆에 있었나요.
   답: 본인은 차 실장이 1발을 맞고 화장실로 들어갈 때 옆에 있는 기타를 치우려고 일어서 있는데 김재규가 각하를 향해 1발을 쏘았는데 각하께서는 본인이 앉았던 쪽으로 쓰러지기에 본인이 가서 부축을 하고 각하를 바로 세웠습니다.

   문: 그후 김재규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각하에게 1발을 쏘고 나갈 때까지의 경위에 대해 진술하시오.
   답: 김재규가 차 실장과 대통령 각하에게 각 1발씩을 쏘고 난 뒤에 김재규는 머뭇거리며 다시 총을 장전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 전깃불이 나갔으며 다시 김재규가 들어왔을 때는 불이 들어왔었으며 김재규는 연회석 입구에서 문갑을 잡고 피하는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해 총을 쏘았고 그리고는 탁자를 돌아서 꾸부리고 있는 각하 곁으로 와서 각하의 머리를 향해 또 1발을 발사하였는데 본인은 총쏘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부속실로 도망을 갔습니다.
  
   문: 두 번째 김재규가 총을 쏘러 들어왔을 때 진술인과 신재순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답: 본인은 각하 좌측에서 신재순은 각하 등쪽에서 피를 막고 있었습니다.

   문: 두 번째 들어오는 김재규를 분명히 보았는가요.
   답: 예. 차 실장을 쏘고 각하 곁으로 왔을 때 김재규와는 눈이 한번 마주치기까지 했습니다.

   문: 대기실 옆의 부속실로 들어가서 귀가할 때까지의 경위에 대해 진술하시요.
   답: 본인이 부속실로 도망을 와 있는데 조금 후에 신재순이도 들어 왔으며, 그리고 얼마 뒤 바로 옆 대기실 입구에서 총성이 들리더니 계속해서 총소리가 몇 발 들렸으며, 그러다가 조용해지자 본인들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대기실에 두었던 핸드백을 가져오라고 하였더니 신양이 들어가서 핸드백을 가져왔는데 본인도 한 사람이 그곳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신양이 두 명이 쓰러져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서 얼마간인가 둘이서 계속 대기하는데 남효주가 와서는 빨리 나오라고 하여 둘이서 함께 앞건물의 경비원 대기실 방으로 갔습니다. 그때가 22:30경 이었는데 그곳에서 손을 씻기도 하고 그곳에 계속 기다리다가 남효주가 23:30경 본인과 신양을 내자호텔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고 본인은 그곳에서 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문: 부속실에서 있는 동안 바깥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 본적이 없나요.
   답: 경비원 대기실 부근에서 누가 “다 죽였어”하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으나 그외는 들은 것이 없습니다.

   문: 경비원 대기실 방으로 가서 무슨얘기를 들은 것은 없나요.
   답: 별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곳에 가서 TV를 켜니 금주의 인기가요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 두번째 김재규가 각하와 차지철에게 총을 쏘고난 뒤 차지철은 즉사하였나요.
   답: 아닌 것 같습니다. 도망와 부속실에 있는데도 계속해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문: 각하께서 2번째 총을 맞고 난 뒤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나요.
   답: 부속실로 도망와 있는데 연회석 쪽에서 김계원 비서실장이 '각하 괜찮으십니까'라고 각하에게 묻는 것 같았으며 그러더니 각하 빨리 모셔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문: 더 진술할 것이 있나요.
   답: 없습니다.
   문: 이상 진술은 사실과 틀림이 없나요.
   답: 예 모두 사실대로 진술했습니다.

   서기 1979년 11월18일
   진술인 성명 沈玟卿(沈守峰)
  
   육군본부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
  
   검찰관 대위 차한섭
   검찰서기 상사 이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