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성지(聖地)가 된 광화문
[김석우 칼럼] 성지(聖地)가 된 광화문 대한민국의 오늘의 번영은 기적이었다. 대부분 젊은이는 태어나서부터 가난을 겪지 않았기에, 원래부터 한국이 잘 살았다고 착각하기 쉽다. 586 운동권 출신들은 특히 1980년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라서 취업 문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오해하기 쉽다. 그들은 반정부운동하느라 공부를 안 했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한데 민주화 투사라고 자랑하면서도 북한 정권의 독재에는 외면해왔다. 북한의 인권문제도 모르는 체한다. 그래서 종북주사파라고 한다. 핵심 그룹은 아직도 전향했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산 세력의 6.25남침을 물리치고 나라를 건설하였다. 휴전 후 70년은 세계 유례없는 성공의 역사였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하였다. 이승만,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가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불어넣고 온 국민이 피와 땀을 흘린 결과다. 그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권 시기에 북한에 먹힐뻔한 위기를 두세 번 겪어야 했다. 노무현 시기와 문재인 시기가 특히 그러했다. 한때 “적화는 되었는데 통일만 되지 않았다”고 애국시민들이 소리죽여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그러한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낸 것은 두터운 시민사회의 존재였다. 시민사회는 정부, 가족, 시장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한국의 정치가 권위주의적이었고 경제가 허약했던 시기에는 시민사회의 역량도 미약하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에 따라 함께 커졌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시민단체 활동으로 나타났고, 그 양태는 정치, 경제, 사회, 학술, 문화, 인권. 자선, 체육, 친목을 비롯하여 다양하였다. 물론 반정부운동도 포함될 수 있다. 정부가 아닌 민간 시민사회가 성장한 것이다. 그 자유시민 세력이 남·북 좌파의 합작에 의한 공산화 위험을 막아낸 것이다. 주사파가 청와대를 장악하여 나라를 망치려던 위기를 시민사회가 저지한 궤적은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자산으로 기록해야 한다. 친북세력은 평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끈질기게 국가를 위태롭게 하였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소위 햇볕정책은 공산권 몰락의 대세에 따라 곧 무너질 북한 정권이 소생하도록 숨통을 터주었다. 대북 송금과 식량원조는 북한 주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지 않았다. 핵·미사일과 같은 치명적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자금이 되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고를 트집 잡아 본격적인 반미운동이 시작되었다. 반미운동이 없던 유일한 나라였던 한국에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간헐적이던 반미시위가 길거리를 점령하는 조직적 반미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이어졌다. 시민사회는 갑작스러운 사태 전개에 놀랐다. 급기야 북한 정권에 먹히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2004년 10월 4일에는 시청 앞 광장에 30만 시민이 운집하여 ‘국가보안법 사수’와 친북·반미 정책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말 없는 다수 국민이 나라 수호 의지를 보인 것이다. 반미운동의 확산이 친미 인사라고 알려진 김대중 시기에 시작된 걸 미국은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클린턴 백악관이 크게 환호하였으나, 점차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다. 드디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취임 초에 백악관을 방문한 김대중이 햇볕정책을 설명하려 하자, This Man!이라는 호칭으로 냉대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였다. 대한민국의 선거에서 선전·선동이 크게 작용하고 가짜뉴스가 여론을 좌우했다. 많은 선전·선동 행위는 검증된다고 하더라도 선거가 끝난 다음 그 결과를 고치기는 매우 힘들다. 가짜뉴스에 의한 선전·선동이 극성을 부렸다. 김대업의 가짜뉴스나 드루킹의 여론조작 사건이야말로 대표적인 범법 사례다. 이명박 정권 당시 소위 광우병 파동으로 시내 중심가가 3개월 이상 무법천지가 되었다. 이명박은 그 위세에 몰려 북악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부르고 식물정부로 전락했다. 박근혜 정권이 되자 다시 촛불 데모라는 선전·선동으로 탄핵을 유도하여 감옥으로 보냈다. 그 핵심 세력이 민노총을 비롯한 좌파 연합이었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단이 작용한 것은 최근 드러나고 있다. 비겁했던 자유시민들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광우병 사태나 박근혜 퇴진 촛불 난동에 대해 방관하던 자세를 고치게 되었다. 2017년 시작한 문재인 정권이 북한 독재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과속 인상, 무리한 탈원전 추진, DMZ방어시설 제거, 한미작전통제권 조기인수 추구 등 북한 정권이 좋아할 정책들을 보고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전체적인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인식하였다. 6.25 당시 낙동강 전투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보았다. 성숙해진 자유시민들이 2017년부터 매주 토요일 광화문 이승만 광장에 모여들어 나라를 지키자는 국민운동을 시작하였다. 대부분 참가자는 70대 80대의 은퇴자들이었다. 꼰대라고 불리는 그들이 실은 한국을 세운 주역들이었다. 회사에서, 군에서, 학계에서, 정부에서, 언론계, 문화계에서 피땀 흘렸던 역군들이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자생적 시민단체가 ‘나라지킴이고교연합’이다. 그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광장에 나와 공산화를 막기 위한 대중집회를 계속하였다. 주요 언론조차도 문재인 정부의 통제에 지레 겁을 먹고 상당 기간 수만 명의 광화문 집회를 보도하지 않았다. 좌파의 촛불집회는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던 언론이 자유시민 세력의 집회는 외면한 것이다. 그 애국 세력이 지난 대선에서 0.73퍼센트의 근소한 차이로 윤석열이 당선되도록 기여한 것이다. 전 세계 유례가 없는 노인혁명(Silver Revolution)을 성공시킨 것이다. 4.19혁명의 주역이었던 그들이 성공한 대한민국을 북한 정권에 송두리째 바치려는 종북주사파의 음모를 막는데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이다. 자기들이 세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몸은 비록 늙었어도 가슴은 청년과 같이 뜨거웠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내려는 열정은 변함없었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공산화 위기를 막아냈다. 마치 한국이라는 연못에 가득한 잉어 떼를 김정일의 마수가 그물로 잡았으나, 뒤 심이 허약하여 뭍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주저앉도록 만든 셈이다. 김정일의 공산화 꿈을 좌절시킨 힘은 산업근대화를 통해 성장한 대한민국 시민사회였다. 지금도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내건 민노총과 이재명 지지 세력이 용산 삼각지를 휩쓰는 걸 막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윤석열 정부가 예뻐서라기보다도 대한민국이 북한 정권의 공략에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자유, 민주, 인권의 가치를 신봉하고, 법치주의 사회를 추구한다. 땀 흘려 노력해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회를 원한다. 하는 일도 없이 국가 재정을 축내는 선심성 공짜는 원하지 않는다. 건설노조와 같이 현장에서 수천만 원의 월례비를 뜯어내는 부당한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다. 불법적인 난동으로 얻는 불로소득을 원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젊은이들에게 얘기했다. 그러한 부정과 부조리를 척결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 MZ세대가 점차 그 의미를 이해해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희망이다. 김석우 객원칼럼니스트(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
노을 05 카페
'時論&安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북주사파의 검은 손 (1) | 2023.05.27 |
---|---|
北이 말하는 제주4.3사건은 태영호의원 주장과 같다 (0) | 2023.03.10 |
‘우리 민족끼리’ 통전술에 속아 나라가 넘어갈 판 (0) | 2023.01.19 |
애국자는 천대받고 놀다사망한 사람 우대, 김태산의 일침 (0) | 2022.11.04 |
호국의달을 맞아... "혈맹국 에티오피아"를 다시 기억합시다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