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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여행,등산/대전재향경우산악회

080509 대전경우 산악회 - 석모도 , (낙가산 과 보문사, 초지진 )

by 보덕봉 2008. 5. 11.

   낙가산(落袈山) 과 보문사(普門寺) & 초지진(草芝鎭)

 08,5,9   5월의 1일 코스

60이상 모임 정기 산악회의 당소 목표는 강화도 석모도 낙가산 (267m)이다

대전에서 1일 코스로는 시간이 너무 없다

예와 같이 2,3그룹으로 나누어 진다

 

주봉인 해명산 ~ 낙가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는 4시간이라  전부 포기하고

낙가산 한 봉만  일부 산행하고 나머지는 보문사 탐방으로 마무리다.

 

일행은 낙가산 보문사 탐바을 마치고,  배뜨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 버스 기사의 배려로

인근 석모도 민머루 해수욕장 의 쓸쓸한 봄 바다를 본후

초지진 의 불행한 역사를 되새기고 귀환 했다

 

사와 자연이 숨쉬는 곳 강화는 * 역사의 고장으로 고려궁지, 고인돌,강화역사관,등이있고

 호국의 고장 으로 광성보,초지진, 덕진진 등이 있고

강화도 산도 낙사산,마니산,해명산,혈구산,고려산,혈구퇴모산 등이 있으나

 

이번 여행에는 석모도 낙가산과 보문사 , 초지진 만 탐방하게 된다.

 

 관광지로 바다와 산이 잘 어우러 지고 호국 역사적 고장이기도 한 곳, 공기도 아주 쾌청하고 조용하고

 과히 높지않은 등산도 겸할수 있어 자주 오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하산후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와 막걸리 가 별미다

         보문사  일주문 -  관광객이 많히 들락거린다

   강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와 금산 보리암 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 도량이다

 보문사의 주 전각인 극락보전 과 정면 5칸 측면3간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관세음 보살상을 비롯 3000불이 모셔져있다.

 

         3일후가 부처님 오신날  이라 사찰에는 연등이 정말 연꽃밭을 이루고 있다

  나혼자 극락보전에 모셔진 삼존불 부처님께 알현하고 念佛을 하고 나오니 ,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극락보전에 모셔진 삼존불

문사 는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있다.
양양낙산사와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강화에서 11km 떨어진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바다를 건너면 석모도의 관문인 석포리 선착장에 다다를 수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석모도는 관광지라기 보다 기도를 위해 찾아오는 불자들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섬 서쪽의 해명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보문사"가 기도의 효험이 높은 국내 3대 기도 도량 중의 하나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보문사의 보물동천 석굴사원 입구 -  안에는 23분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한상이 모셔진 전설이 있다.

선덕여왕 4년 (635) 석모도에 살면서 고기를 잡아 생게를 이어가는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쳤으나 고기는 잡히지 않고 이상한 돌들만 걸려  그날은 그냥 집에 돌아왔는데  삼일째 되는날 밤 꿈에 노승이 나타나 내일 다시 그물을 치고 걸리는 바위가 모두 불상이므로 잘 모셔라 하고 일러 주었다.

이 어부는 다음날 그물을 쳐보았는데 다시 그 돌들이 걸려 올라와 꿈에 나타난 노승의 말대로가져와서  여기 이 석굴에 모시게 되었다는 설화다. 다음 날, 23개의 불상을 건져올린 어부는 꿈 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의 보문사석굴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석굴이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마애 석불 좌상 있는 곳으로 가는 계단  -   164계단 오로  오르면 전신에 땀이 밴다

 

 

   시의 유형문화재 제29호  마애석불좌상  -  1928년 주지 배선주 스님과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 이 조성한 관음 보살상 이다.   낙가산 중턱 눈섭바위 아래에 있다

 기도의 효험이 많다하여 오늘도 열심히 기도 하는 사람이 많다

   ( 이곳은 길이 좁고 미끄러워 낙상 요조심 - 대원 한명이 넘어져 코뼈가 약간 다쳤다.)

 

6067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민족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하고 당시의 대포를 진열하였다.

 

 

 

 

   점령한 미군들의 당시 모습 사진

 

 

 

 

 

 

 

 

     교육용으로 진열한 당시 대포

  

    초지진(草芝鎭) 전경

    초지진 앞에  경인 대교가 보인다

 

 

   로점 상에는 강화 특산물이 없는것이 없다   상인들은 거의  할머니 들이다.

 

 

      연락선 ; 버스에 승차한채 건너고 건너 왔다

   배만 출발하면 모여드는 갈매기 떼들이 장관이다 - 오늘은 많지않다

     역시 먹이를 많이 던져 주어야 많이 몰려 든다

 

낙가산에 사람을 보내면서

                                       (送人洛迦山)

 

                             白雲 和尙

  

진리의 묘한 바탕 머뭄 없으니

관음보살 거룩한 참된 성인이

어찌하여 동해에만 계실 것인가

 

우리 눈에 비치는 푸른 山들이

그 어느 곳 진리의 도량 아니기에

특별히 낙가산을 예배하는가

 

모든 물건 돌이켜 참모습 보면

온갖 법이 부처님의 참 생명이니

눈에 비친 푸른 山 그 어느 곳이

두렷 통한 삼매의 경계 아니리

 

그러므로 진리의 눈 바로 못 뜨면

보타락가 헛되이 찾아 갔다가

부질없이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

 

 

 

*출전

  관음예문선해/법성/큰수레/1993